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 인질사건 (문단 편집) == 여파 == 페루 정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테러리스트들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초지일관 유지해 나갔다. 이 대사도 페루 정부의 이러한 강직함을 높이 평가했을 정도였다. 수많은 외교사절들과 자국의 정치인들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도 '테러리스트와 협상불가'라는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갔는데 이것은 오히려 수많은 인질들을 살리는 효과를 낸 것이다. [[리마 증후군]]이 이 사건을 계기로 조명되었는데 테러리스트들이 인질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처지에 동감하게 되고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본 대사관은 이후 다른 건물로 이전했고 대사관 건물은 철거되었다. 사건 당시 페루는 대테러작전에 전문화된 특수부대가 없었기 때문에 자국 육해공군 장교들을 선발해 급조한 특수부대를 편성했다. 훈련 기간이 짧았음에도 이들의 숙련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미 육군 고문관도 놀랐다고 한다. [[FN P90]]이 처음으로 실전에 등장한 사건이기도 하다. [[님로드 작전]]으로 [[H&K MP5]]가 유명해진 것처럼 이 사건을 계기로 P90이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시에 [[대우정밀]]의 자동산탄총 [[USAS-12]]를 특수 부대원 중 1명이 장비하고 있는 모습이 방송에 나와서 당시 [[밀덕]]들의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성공적인 작전이긴 했으나 특수부대원들이 항복 의사를 표한 테러리스트까지 전부 사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판받기도 했다. 이 사건 당시 인질로 잡힌 한국인 중에 [[광개토대왕릉비]]의 조작설을 제기한 재일 사학자 이진희와 그의 아들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